로봇, 미래의 귀환(1) 흑사병과 자동화
옛날 이야기를 할게요. 14세기, 흑사병이요. 사태 이전 세계 인구는 4억 5천만명 정도였는데, 15세기에는 대략 3억 5천만으로 줄었습니다. 세 명 중 한 명 꼴로 죽었다는 이야기에요. 코로나 따위 따위 격이 달랐던 사건인 셈입니다. 게다가 코로나가 목숨을 앗아간 사람들이 주로 고령층임을 감안하면, 나이 성별 무관 죽어나자빠진 흑사병은 그야말로 대재앙이었던 겁니다.
흑사병과 중세 유럽을 이야기하면 비이성 혹은 광기에 가까운 우화들이 사례집처럼 늘어지곤 해요. 많은 사람들이 더러운 냄새를 병의 원인으로 믿었고, 심지어 <파리대학 의학부>는 천체의 운행이 페스트를 발생시켰다고 발표하기도 했어요.
1348년 창궐한 역병의 보편 원인이 천체의 운행에 있다는 주장은 파리 대학 의학부 교수진에 의해 공식적으로 처음 제기되었다. 그들은 프랑스 왕 필리프 6세(Philippe VI, 제위: 1328∼1350년)의 명령에 따라 1348년 10월에 역병의 원인을 규명하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그에 따르면 1348년 역병의 원인은 1345년에 있었던 천체의 운행에서 찾을 수 있다. 1345년 3월 20일 세 개의 행성이 물병자리(Aquarius)에서 ‘합’하였다. 우선 토성(Saturn)과 목성(Jupiter)이 일직선상에 놓였고 이어서 화성(Mars)이 합쳐졌다. 이때의 ‘합’은 이전에 발생했던 행성의 (소규모) ‘합’ 및 일(월)식과 더불어 공기를 부패하게 했고, 그 결과 1348년 수많은 사람이 사망하게 되었다는 게 그들의 해석이었다.
1347/8년∼1351년 1차 흑사병 창궐 원인에 대한 당대 의학계의 인식: 전통적 인식론에서 독(poison) 이론까지, 이상동
뭐, 비웃는 건 아니에요. 2022년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가 5G기지국에 의해 확산되었다거나, 거대 IT기업의 창업주가 의도적으로 퍼트린 바이러스라는 걸 믿고 있기도 하니까요. 몇 백 년이 지나도, 인간은 변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이런 우화의 나열만 있었던 것도 아니긴 해요. 당시 사람들은 감염자와의 접촉이 감염 경로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했습니다. 이탈리아의 경우, 감염지로부터 도항한 이주자에 대해 일정 기간의 구금을 통해 잠복기를 넘기는 방법을 시행하기도 했거든요. 요즘이랑 이것도, 비슷하죠? 바로 여기에서, 영어로 검역을 뜻하는 단어 ‘쿼런틴’이 유래했습니다. 그리고 역사를 뒤져보면 현대에 비춰봐도 꽤 과학적이고 꽤 성공적인 방역을 해낸 지역조차도 실존합니다.
하지만, 이 글은 방역이 주제는 아니니까요. 주제는 믿기지 않으실지도 모르지만 로봇입니다. 세 명 중 한 명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다른 말로는 급격한 노동가능인구의 감소라고 부를게요. 뒤집어서는 인건비의 증가이기도 하구요.
흑사병 이전의 중세 유럽 인구구조는 꽤 안정적인 피라미드 구조로, 봉건 계급사회에 적합했습니다. 다수의 값싼 노동력이 소수의 특권계층을 떠받치기에 충분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별다른 변혁 없이 이 상태가 오래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흑사병이 터졌죠. 당연히 값싼 노동력 계층이 더 심한 피해를 받았습니다. 지식적으로도 어느 정도 흑사병의 원인을 어림했으며, 영양 상태와 의료적 지원이 충분한 지배 계층은 상대적으로 덜 죽었습니다. 흑사병 이후 유럽의 피라미드 인구구조는 ‘일시적으로’ 붕괴했으며, 바로 이것이야말로 전 유럽 그리고 세계에 정치, 문화, 경제, 사회, 종교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준 주 원인일 거예요.
‘흑사병은 1차 산업혁명이 태어나는 동인이 되었다’
피터 테민, MIT
그리고 여기에서 자동화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자본가들은 비싸진 목숨값을 대신해 노동을 대체할 기술 그 자체에 자본을 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자, 이제 좀 지금 이야기같죠? 15세기 유럽의 주요 발명품을 몇 개 나열해보겠습니다. 생각나는 것들은 태엽과 용수철, 항해용 천문관측의, 강선, 복식부기 정도겠어요. 태엽과 용수철은 네, 아직도 로봇의 주요 제품이죠. 바다와 총을 통해서 이 시기 벌써 제국주의는 싹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값싸게 아무데서나 니가 아니어도 할 사람 많았던 일들의 단가가 올라가면서, 자본가들은 비용을 낮추기 위해 작업의 자동화를 연구했고 노동력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흑사병’ 그리고 흑사병이 바꿔놓은 인구구조가 기저에 있다고 생각해요.
자, 그럼 현재 이야기를 해보죠. 아니면 (2)편으로 이어 쓸까요? 아니 저는 괜찮은데… 다 읽기 힘드실까봐. 현재 이야기도 하고, 미래 이야기도 해야 되는데 어떻게 하나?
그럼 현재 이야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역사는 반복되지는 않지만 라임을 맞춘다고 하죠. 뭐 실제로 그가 그런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별 상관 없습니다. 어쨌든 그럴싸하니까.
현재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놀랍게도! 코로나가 아닙니다. 흑사병이니까 당연히 코로나가 올 줄 알았다면 오산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중국의 노동가능인구 감소에요. 그리고 이 감소세는 생각보다 급격할 겁니다. 그 성장이 폭발적이었던 것처럼요. 중국의 노동가능인구 감소와 인도와의 인구 역전 기사는 2020년대 초반부터 간간히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째서 ‘중국’의 노동가능인구 감소가 중요하냐하면, 현재 세계 제조업의 3-4할은 중국을 거쳐야만 하기 때문이에요.
중국의 인구구조는 세계 물건값에 영향을 크게 미치게 되죠. 여기에 하나 더해, 정치적인 이유로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이 점차 중국의 제조업 의존도를 낮춰가고 있어요. 2023년, 미국 수입 총량에서 줄곧 1위를 차지하던 중국은 멕시코에게 그 자리를 내줬습니다.
이 두 가지 요인은 마치 흑사병 이후의 유럽처럼, 노동가능인구에 대한 접근성을 급격하게 낮추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처했던 그 때의 자본가들처럼 우리 시대의 자본가들도 ‘자동화, 로봇’에 돈을 쏟아붓고 있죠. 15세기에 발명했던 태엽과, 용수철의 다음 버전에 말입니다.
바로 이런 배경이, 하필 지금 로봇과 자동화가 각광받고 있는 가장 밑단에 흐르는 이유가 될 거예요. 미래 이야기는 너무 길어지니까 (2)편에 쓰죠. 그래서 어떻게 될건가. 에 대한 이야기요.